담양10정자

담양 10정자

빼어난 경관과 절경을 자랑하며, 편안한 여행의 쉼터가 될 담양명소를 소개합니다.

식영정

식영정(息影亭)
- 지정별 : 명승 제57호
- 규모 : 정면 2칸, 측면 2칸
- 시대 : 조선시대(1560)
- 지정일 : 1972년 1월 29일
- 소재지 : 전남 담양군 가사문학면 가사문학로 859
식영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특이한 것은 한쪽 귀퉁이로 방을 몰아붙이고 전면과 측면을 마루로 두고 있다. 서하당 김성원(棲霞堂 金成遠, 1525-1597)이 명종 15년(1560)에 창건하여 장인(丈人)인 석천 임억령(石川 林憶齡, 1496-1568)에게 증여한 것으로, 송강 정철(松江 鄭澈, 1536-1593)은 이곳 식영정과 환벽당, 송강정(松江亭) 등 성산 일대의 미려한 자연경관을 벗삼으며『성산별곡』을 창작해냈던 것이다. 식영정 옆에는 1973년 송강집(松江集)의 목판을 보존하기 위한 장서각(藏書閣)을 건립하였으며, 1972년에는 부속건물로 부용당, 성산별곡(星山別曲) 시비(詩碑)가 건립되어 있다.

소쇄원

소쇄원(瀟灑園)
- 지정별 : 명승 제40호
- 규모 : 정원 일원(1,500평)
- 시대 : 조선 중종(1530년대)
- 지정일 : 2008년 5월 2일
- 소재지 : 전남 담양군 가사문학면 가사문학로 967-15
소쇄원은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은사인 정암 조광조(趙光祖, 1482∼1519)가 기묘사화(己卯士禍)로 능주로 유배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출세에의 뜻을 버리고 자연 속에서 숨어 살기 위하여 꾸민 별서정원(別墅庭園)이다. 주거와의 관계에서 볼 때에는 하나의 후원(後園)이며, 공간구성과 기능면에서 볼 때에는 입구에 전개된 전원(前園)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溪園) 그리고 내당(內堂)인 제월당(霽月堂)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內園)으로 되어 있다. 소쇄원은 조선시대 대표적 정원의 하나로 10여 개의 건물로 이루어졌으나 지금은 몇 남아 있지 않았다.

면앙정

면앙정(俛仰亭)
- 지정별 : 지방기념물 제6호
- 규모 : 정면 3칸, 측면 2칸
- 시대 : 조선시대(1560)
- 지정일 : 1972년 1월 29일
- 소재지 : 전남 담양군 봉산면 면앙정로 382-11
- 문의처 : (061) 380-3732
1972년 8월 7일 전라남도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었다. 1533년(중종 28) 송순(宋純:1493~1583)이 건립하였는데, 이황(李滉:1501~1570)을 비롯하여 강호제현들과 학문을 논하며 후학을 길러내던 곳이다. 봉산면 제월리 제봉산 자락에 있는데, “내려다보면 땅이, 우러러보면 하늘이, 그 가운데 정자가 있으니 풍월산천 속에서 한백년 살고자 한다”는 곳이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추녀 끝은 4개의 활주가 받치고 있다. 목조 기와집으로 측면과 좌우에 마루를 두고, 중앙에는 방을 배치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여러 차례 보수한 것이며, 1979년에는 지붕의 기와를 교체하였다. 최초의 모습은 초라한 초정으로 바람과 비를 겨우 가릴 정도였다고 한다.
송순은 면앙정에서 면앙정가단을 이루어 많은 학자·가객·시인들의 창작 산실을 만들었다. 정자 안에는 이황·김인후·임제·임억령 등의 시편들이 판각되어 걸려 있다. 다시말해 이곳은 송순의 시문활동의 근거지이며, 당대 시인들의 교류로 호남제일의 가단을 이루었던 곳이다.

명옥헌

명옥헌
- 지정별 : 명승 제58호
- 규모 : 일원
- 시대 : 조선시대
- 지정일 : 1980년 6월 2일
- 소재지 : 전남 담양군 고서면 후산길 103
조선 중기 오희도(吳希道:1583~1623)가 자연을 벗삼아 살던 곳으로 그의 아들 오이정(吳以井:1574∼1615)이 명옥헌(鳴玉軒)을 짓고 건물 앞뒤에는 네모난 연못을 파고 주위에 꽃나무를 심어 아름답게 가꾸었던 정원이다. 소쇄원(瀟灑園)과 같은 아름다운 민간 정원으로 꼽힌다.
명옥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정자이다. 교육을 하기 위한 적절한 형태로 건물이 지어져 있다. 건물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 개울을 타고 오르면 조그마한 바위 벽면에 ‘명옥헌 계축(鳴玉軒癸丑)’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건물 뒤의 연못 주위에는 배롱나무가 있으며 오른편에는 소나무 군락이 있다. 명옥헌 뒤에는 이 지방의 이름난 선비들을 제사지내던 도장사(道藏祠)의 터가 남아 있다.
우리나라의 옛 연못이 모두 원형이 아니라 네모 형태를 한 것은 세상이 네모지다고 여긴 선조들의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계곡의 물을 받아 연못을 꾸미고 주변을 조성한 솜씨가 자연을 거스리지 않고 그대로 담아낸 조상들의 소담한 마음을 그대로 반영하였다. 소쇄원이 그러하듯이 이 명옥헌의 물소리도 구슬이 부딪쳐 나는 소리와 같다고 여겨, 명옥헌이라고 하였다. 건물에는 명옥헌 계축이라는 현판과 더불어 삼고(三顧)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명옥헌의 오른편에는 후산리 은행나무 또는 인조대왕 계마행(仁祖大王 繫馬杏)이라 불리는 은행나무가 있다. 300년 이상된 노거수로 인조가 왕이 되기 전에 전국을 돌아보다가 오희도를 찾아 이곳에 왔을 때 타고온 말을 매둔 곳이라 해서 이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송강정

송강정(松江亭)
- 지정별 : 지방기념물 제1-2호
- 규모 : 정면 3칸, 측면 3칸
- 시대 : 조선시대(1585)
- 지정일 : 1972년 1월 29일
- 소재지 : 전남 담양군 고서면 송강정로 232
- 문의처 : (061) 380-3752
1972년 1월 29일 전라남도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환벽당, 식영정과 함께 정송강유적이라고 불린다. 서인에 속했던 정철은 1584년(선조 17) 대사헌이 되었으나,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인의 탄핵을 받아 다음해에 대사헌직에서 물러났다. 그후 이곳 창평(昌平)으로 돌아와 4년 동안 조용히 은거생활을 했다.
여기에서 초막을 짓고 살았는데 당시에는 이 초막을 죽록정(竹綠亭)이라 불렀다 한다. 지금의 정자는 1770년에 후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그때 이름을 송강정이라 하였다. 정철은 이곳에 머물면서 식영정(息影亭)을 왕래하며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비롯하여 많은 시가와 가사(歌辭)를 지었다.
정철의 은거와 관련된 송강정은 동남향으로 앉아 있으며, 건물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고 단층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중재실(中齋室)이 있는 구조로, 전면과 양쪽이 마루이고 가운데 칸에 방을 배치하였다. 정각 바로 옆에는 1955년에 건립한 《사미인곡》 시비가 있으며, 현재의 건물 역시 그때 중수한 것이다.
정자의 정면에 ‘송강정(松江亭)’이라고 새겨진 편액이 있고, 측면 처마 밑에는 ‘죽록정(竹綠亭)’이라는 편액이 있다. 둘레에는 노송과 참대가 무성하고 앞에는 평야가 펼쳐져 있으여, 멀리 무등산이 바라다보인다. 정자 앞으로 흐르는 증암천(甑岩川)은 송강(松江) 또는 죽록천이라고도 한다.

독수정

독수정(獨守亭)
- 지정별 : 지방기념물 제61호
- 규모 : 정면3칸, 측면3칸
- 시대 : 조선시대
- 지정일 : 1982년 10월 15일
- 위치 : 전남 담양군 가사문학면 독수정길 33
이 정자는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때 북도안무사(北道按撫使) 겸 병마원수(兵馬元帥)를 거쳐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낸 전신민(全新民)이 세운 것이다. 선생은 고려가 망한 후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내려와 두 나라를 섬기지 않을 것을 혼자나마 지키겠다는 뜻으로 독수정(獨守亭)을 건립하고 이곳에서 아침이면 조복(朝服)을 입고 북쪽 송도(松都)(지금의 개성(開城))를 향해 곡배(哭拜)하였다고 한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이다.
독수정 원림은 조경적인 측면에서 볼 때 고려시대에 성행했던 산수원림으로서의 기법을 이 지역에 들여오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주변의 다른 정자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지금의 독수정은 1972년에 허물고 새로 지은 것이기 때문에 기념물로 지정되지 못하였고, 그 주변의 노거수원림이 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이곳에는 느티나무, 회화나무, 왕버들, 소나무, 참나무, 서어나무 등의 오래 된 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독수정 앞뜰에는 자미나무, 매화나무, 살구나무, 산수유나무 등이 심어져 있어 속세를 떠난 느낌을 준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전신민은 대나무와 소나무를 심어 수절을 다짐했다고 한다. 또한 독수정의 방향은 북쪽으로 향해있는데, 이는 아침마다 북쪽 송도(지금의 개성)를 향해 탄식을 하며 절을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상월정

상월정(上月亭)
- 지정별 :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17호
- 규모 : 정면 4칸, 측면 2칸
- 시대 : 조선시대
- 지정일 : 1984년 2월 29일
- 위치 : 담양군 창평면 용운길 142-1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17호로 지정된 상월정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로 팔작지붕에 한식 기와를 얹은 건물이다. 4칸 중 좌우는 방으로, 중앙 2칸은 마루를 깔아 강당 형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막돌로 쌓은 기단 위에 덤벙주춧돌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에는 창방을 걸치고, 보아지를 직각방향으로 끼워 넣은 다음 주두를 얹었다. 주두 위에는 다시 우미량형의 툇보를 걸쳤으며, 장여받침 굴도리를 받친 민도리집 형식이다.
상월정은 창평지역에서 가장 처음 생긴 정자로 이곳은 원래 월봉산에 있는 대자암(大慈庵) 절터인데, 정자라기보다는 절의 느낌을 준다.

연계정

연계정(連溪亭)
- 위치 : 전남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
조선 선조때 선비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 1513~1577)의 정자입니다. 미암 유희춘은 조선전기의 대표적인 생활일기인 『미암일기』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원래 해남 출신이었다.그는 후에 담양으로 이거하게 되는데, 당대의 여류문인이었던 담양출신 송덕봉과 혼인한 때문이었다. 유희춘이 살았던 16세기의 혼인풍습은 고려의 남귀여가혼(男歸女家昏) 풍습이 강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에, 남성이 혼인한 후에 처변에 거주하는 일이 많았다. 그 또한 당시의 풍속에 따라 해남에서 처가가 있던 담양으로 이거하여 정착하였던 것이다.그는 하루하루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빠짐없이 기록하였다. 무슨 편지를 받거나 어떤 소식을 들으면 놓치지 않았다. 집안 살림살이는 물론 자신에게 흠이 되는 일도 빠뜨리지 않았다. 병들어 누웠을 때에도 그치지 않았다. 『미암일기』는 자상하고 근실한 생활의 소산이었다. 유배가 끝나고 조정에 나온 선조 1(1567)년 10월부터 세상을 떠나기 바로 직전인 선조 10(1577)년 5월까지 10년 간의 일기가 현재 남아 있다. 아마 이전의 유배지의 일기는 없어졌을 것이다. 일기는 양이 방대할 뿐만 아니라 내용도 다양하여 조선중기 선비의 생활과 향촌사회의 모습을 소상히 전해주고 있다. 또한 조정의 대소사도 빠지지 않고 기록하였다. 때문에 임진왜란으로 승정원일기 등 선조대 초반의 기록이 다 불타버리자, 광해군대 선조실록을 편찬하면서 『미암일기』를 기초 사료로 활용할 정도였다. 『미암일기』는 현재 보물 26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담양 대덕면 장산리의 종택에 있는 모현관에 보관되어 있다. 현재 새로운 유물관이 건립 중에 있다.

관어정

관어정(觀魚亭)
- 지정별 : 담양군향토유형문화유산
- 규모 : 팔작지붕에 전면 2칸, 측면 2칸
- 시대 : 조선시대
- 위치 : 담양군 수북면 나산리 171-4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꼽힌 관방제림. 바로 관방제림 언덕에 관어정이라는 고적한 누정이 자리잡고 있다. 조선시대 후기 담양부사가 이곳에 누정을 지어 정취와 풍월을 만끽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때 신사로 대신했던 비운의 장소였다가 훗날 다시 마을주민들의 품으로 돌아와 마을의 쉼터로 되찾았다. 관어정에서 내려다보이는 굽이친 담양천의 물길을 바라보며 자연과 물아일체를 느껴볼 수 있다.
관어정은 이름부터가 좀 특이하다. 관어정(觀魚亭)이란 한자를 하나씩 뜯어보면 ‘고기를 보는 정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정자의 주변 풍광이 그만큼 아름답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정자문화의 고을’이라는 담양의 정자 가운데서도 풍광이 가장 빼어난 곳을 꼽으라면 단연 관어정을 들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정자는 담양천의 수변과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멋스러움과 고전미를 갖고 있다.
관어정은 팔작지붕에 전면 2칸, 측면 2칸의 형태로써, 1857년 담양부사 황종림이 지금의 담양군의 중심지에 건립했다.
이곳은 담양지역 젊은 유생들이 시가(詩歌)를 읊던 장소로 이용됐다고 한다. 옛날에는 담양천의 물이 정자 밑에까지 흘러들어와 난간에 걸터 앉아 낚시도 하고, 물 속에서 노니는 고기들의 모습을 보고 즐기기도 했다고 전한다. 특히 무더운 여름에는 주변의 숲이 울창해 지역주민들의 휴식처로도 널리 이용되기도 했다.

남극루

남극루(南極樓)
- 지정별 : 담양군향토유형문화유산 제3호
- 규모 : 정면 3칸·측면 2칸의 2층 누각
- 시대 : 조선시대
- 지정일 : 2003년 6월 30일
- 위치 : 전남 담양군 창평면 삼천리 396번지
2003년 6월 30일 담양군향토유형문화유산 제3호로 지정된 남극루는 1830년대에 고광일을 비롯한 30여 명에 의해 건립된 누각으로,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삼천리 하삼천마을 논 가운데에 있다. 원래 담양군 창평면 창평리 면사무소 앞의 옛 창평동헌 자리에 있었으나 1919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 세운 것이라 한다.
정면 3칸·측면 2칸의 2층 누각 형식 팔작지붕집으로, 담양 지방에서는 보기 드물게 평지에 세운 정자이며, 여타의 정자들보다 규모도 크다. 외벌대의 기단에 높은 누하 기둥을 세웠고, 2층에는 이보다 가는 원기둥을 세웠다. 가구는 5량가이고,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구성되었다.
지금은‘남극루(南極樓)’ 현판은 물론 기문(記文) 또는 중수기(重修記) 등 아무런 현판도 걸려 있지 않으나 현판을 걸었던 흔적은 여기저기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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